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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SM 2017-05-2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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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내가 새롭게 알게된 용어가 있다. BDSM 이라고도 하고 SM이라고도 한다.

소위 가학적 성향과 피가학적 성향이 만나 정신과 육체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라고 해야 맞나....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성 성향 정도?

한쪽은 괴롭히는 것을 즐기고 한쪽은 지배당하고 복종 당하고 괴롭힘을 당한다.

소위 플이라는 것을 통해 그런 행위를 주고 받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안정을 되찾아간다는...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살짝 끌리기도 하고.

 

원래는 자학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다가 마조히즘으로 들어갔고

더 들어갔다가 만나게 된 단어다.

왜냐면 어느순간 내 자신이 스스로를 얽어매고 자학아닌 자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항상 느끼지만 대한민국 여성으로 산다는 일.

남존여비 사상과 여자를 천하게 여기는 관념들이 남아있는 사회에 사는 것은 가끔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내 어머니나 내 조상으로부터 받은 그 피에 의해

나도 모르게 참고 있는 경우가 생겨서다. 

물론 내가 맞고 산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생활에 있어 왜 감당해야할 책임이 여성이 더 많은가에 대해서 나는 끈임없이 불만을 이야기해왔기때문이다.

깨지지 않는 관념과 틀에 대한 답답함.

 

현재 중년의 남성들은 여성과 더불어 밥을 같이 하고 육아를 같이하며 가정생활 전반을 나누어 서로 공유한다는 것이 어렵다

왜냐... 그 넘의 관념때문에...

여자를 지배하고 싶은 그 욕망.

그리고 여성들도 모르게 잠재되어있는 남자한테 의지하고 지배당하고 싶은 욕망.

주인이 되어 소유하고 싶고, 노예가 되어 아무 책임없이 복종하고 의지하고 싶은 욕망.

 

여튼. 그러다가 만난 SM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성격상 관심이 생기면 뿌리를 뽑는 성격이라 이런저런 나름의 정보를 수집해봤다.

프로이트 심리학도 읽어보고 구글에서 다양한 이야기도 접해본다.

 

그리고 내 안의 마조히즘을 느껴본다.

지배와 복종... 강한 자에게 복종하고 싶은 욕구.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아마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도 강한 남자에게 맡겨보고 싶은 욕구는 한번씩 있었을 것같다.

힘만 강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이든 지적이든 능력적이든... 외모까지면 더 좋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드라마는 그렇게 재벌 왕자들이나 멋진 남성들이 많이 나오는가보다.

아이러니하게 여성들은 권위적이고 남성적인 억압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자신을 강하게 리드해줄 남성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SM에선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학대를 당해서 더 비참해지고 싶은 여성들도 있다고는 한다. ㅎㅎㅎ

 

나는 프로이트의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이론이 더 신뢰가 간다.

동양철학을 조금 공부한 사람으로써 사람은 음과 양의 모습을 모두 갖고 있기때문이다.

결국은 그 둘도 결핍에서 시작한 듯싶다. 태아에서부터 유아기를 넘어 성장기를 거치면서 온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성인으로 잘 자라야했는데 자라지 못한 애정결핍의 아이가 무의식에 자리하고 앉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본다.

그 두려움과 원망, 성욕에 대한 죄책감이 자리하면서 무의식의 욕망이 커지고 결국  남을 학대하느냐 자기를 학대하느냐...

 

학대의 개념은 자신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냐에 있을 것이다.

강박증이 있거나 힘든데 잘 참아낸다거나...ㅡㅡ;;;

참는게 좋은 지 알았더니 아니라는 거다. 무조건 참는 것은 병이 들고 터진다.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어찌 그리 잘 참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성을 추하고 더럽다고 여기는데서 그 출발이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그 놈의 도덕이 뭐라고.

여자들에게 더 가혹한 도덕이라는 잣대가 스스로 죄인을 만들어 옭죄어버린다.

그래서 기이하고 매맞고 싶고 수치스럽고 싶고 비참하고 싶은 욕망이 커져버린다.

수치스러운 자신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벌을 받음으로 해방되고 싶어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벌을 받으면 벌 받기 전에는 무서워 떨지만 받고 나면 안심이 되고 해방감을 느끼듯이.

성적이 욕망을 수치스러워 꽁꽁 숨기고 싶은 이면에 더 강렬하게 욕망하는 자신을 누군가 체벌해줌으로 용서받고 싶은.

 

혹 여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야동을 보고 끌렸던 경험이 있으신가?

그럼 한번 무의식의 그 관념을 한번 마주해볼 일이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여성들에게 성은 아직도 수치스럽고 자신이 남성보다 열등하고 비참하다고 무의식에서 누르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특히 그 도덕적 잣대.

이래서 나는 종교를 싫어한다.

특히 기독교... 물론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기독교적인 사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종교는 무릇 모든 사람을 아울러 사랑을 가르쳐야하는데

기독교는 예수의 사랑의 가르침은 어디가고 이상한 율법만 남았다.

결국 믿기만하면 용서받고 하늘나라 간다는 요상한 결론을 만들어 죄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이명박 장로.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진상 기독교인다.

 

사랑하고 믿는 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종교인의 기본이거늘 믿으면 구원되는 것은 잘 따르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어디갔는지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듯싶다. 게다가 성차별 발언이 너무 많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한 죄의식과 죄책감은 현대인들에게 쓸데없이 많은 영향을 주고있다는 생각이다.

제대로 된 종교였다면 개독이라는 소리가 왜 나왔겠냐는 말이다. 물론 기독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기질상 SMER 되지는 못할 거 같긴하다.

사디즘이 되기에 나는 남을 괴롭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마조히즘이 되기에 나는 자유롭기 싶기 때문이다.

자유를 포기하고 지배와 복종을 받아들여 안정을 찾아야한다면 나는 안정보다는 자유를 택할 것이다.

물론 강하고 위대한 자라고 받아들인 그 존재에 대해 존경과 복종을 표시하면서 안정을 찾는 것은 좋은데

그 위대한 자도 인간이라 어찌 완벽하겠느냐 말이다.

성욕만으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엔 나는 너무 생각이 많고 독립적인 주체다.

 

물론 성 성향이라 가볍게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깊어져 있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나는 그들의 결핍을 이해하고 싶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결핍 속에서 살아간다.

 

SM은 지배하고 복종을 통해 합일을 하고 싶어하는 과정이라 본다면 그 둘은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복종을 해야하는 쪽은 자신을 포기해야한다. 정신이든 육체든.

그런데 보통 여자들이 많다고 한다.

웃긴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일수록 남자들이 많아진다고도 한다. ㅎㅎㅎ

이런 관계를 사랑이라 부르기는 뭐하다.

지배를 하는 돔이나 마스터는 자신의 섭이나 슬레이브를 인격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애완견? 애완인 정도로 보고 있는 듯싶다.

온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자와

자신을 온전히 버리고 주인님화 되어가는 자.

그 중간에 성이 끼어있다.  성이나 성욕은 남녀에 있어 사랑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호르몬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이게 빠져버리면 이 관계는 아마 유지하기 힘들지 싶다.

사람들은 오르가즘을 느끼면 사랑을 받고 있다고 무의식의 에고는 느낀다.  남녀가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에고는 육체적이고 육체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감이니 그럴수 밖에... 성의 끌림만으로도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들이 맺는 계약을 DS라 표현한다. 주인과 노예의 계약정도?

하지만 이 관계는 감정이 들어가게 되면 끝을 향하게 된다.

물론 자신의 연인과 색다른 쾌감을 위해 적절히 응용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DS의 관계에서 감정은 아주 위험해보인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자동반사적으로 마조히스트는 새디즘의 사람에게 두려움을 갖게되는데

이 관계가 편해지거나 연얘 감정처럼 흐르게 된다면 섭(노예)는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마조히즘은 수치스럽고 두렵고 비참해질수록 성적으로 흥분을 느끼는데 이 기조의 기본은 두려움이다.

그런데 주인님이 안두려워지면?  수치심이나 비참함이 덜 할 것이고 당연히 흥분하기 힘들게 될거다.

그래서 잘못 가게되면  상상 이상의 고통을 즐기고 있는 마조히즘도 보게된다.

자신의 성기나 육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토록 괴롭히는지... 인간의 쾌락은 가끔 너무한다.

 

여튼 오래도록 DS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은 아무래도 감정이 배재된 상태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될 것이다.

주인과 노예의 충실한 역할 속에서 그들은 성적인 욕망의 충족을 느끼게 되며

스스로의 행방과 안정도 찾게 될 것이다. 억눌린 욕망이 해소될 것이긴 하나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데...

그들은 어쩌면 억눌인 욕망의 해소를 통해 또다른 사랑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에겐 왠지 공허해보인다. 평생 그렇게가 가능한가?

맨날 지배당하고 수치당하고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주인님만이라도 날 알아준다는 사실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당당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주나?  

 

이와 반대적으로 성숙된 사랑이라는 개념은 사람과 사람 간의 능동적인 힘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독립된 인격체를 허용하고 둘의 통합성도 인정하는...

어느 한 사람에게 속해지거나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독립속에서 스스로 소통하며 통합해 가는 과정.

자유를 스스로 가지고 자신의 감정의 주인이 되어 맞추어가는.

사랑은 서로의 능동적인 힘이고 자발적인 선택이고 자유로운 줌(GIVE)이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는 것이 되어지는. 괴롭힘들 당하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가 기쁨인.

 

만약 괴롭힘을 당할수록 사랑한다고 느끼는 양가감정을 지닌 사람이랑 사랑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안 괴롭혀주면 사랑안한다고 느껴서 떠날 확률이 많지 싶다. ㅎㅎㅎ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자신의 요구다.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주면 나도 이렇게 할께 같은?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든 금이 갈 수 있는 관계.

마스터나 돔들도 사람인데 인간적으로 들어가면 그들의 단점과 모순점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더 냉정하고 정을 적당한 선에서만 주고 섭이나 슬레이브를 더 괴롭혀주는 지도 모른다.  

엄격하고 냉정한 돔이나 마스터일수록 여러명의 섭을 두는 경우도 있는 듯 싶다. 아이러니다.

온전한 사랑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받아들이고 성장하면서 큰 행복과 자존감을 얻어나가는 것이 아닌가싶다.

그렇게 쌓여진 신뢰가 쉽게 무너질리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원래 나는 독립적 주체였고 자유를 갈망하는 자라

어느 한 사람에게 속해서 지배와 복종을 받는다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 정도로 복종을 하고 싶게 만드려면 신의 경지에는 이르러야되지 않을까....? ㅎㅎㅎ

그러고보면 종교인들도 마조히즘 적인 기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ㅋㅋㅋ(뭇매 맞을라...)

 

물론 내 안에 사랑을 제대로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가 무의식에 존재해 가끔은 그러싶다는 신호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존재는 사랑으로 치유될 존재이지 더 구속되어야할 존재는 아니지싶다.

성수치심은 여성이라면 그 쓸데없이 가두는 해묵은 틀은 버릴 필요가 있어보인다.

성수치심이 강할수록 자신을 열등하다고 느끼거나 비참하거나 수치스럽다고 느낄테니까 말이다.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 관념은 부서져야할 뿌리 깊은 악폐라고 본다.

 

늘 느끼지만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어떤 모습이든 존중해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나도 스스로 자학을 한다.

강박증까지 아니지만 학창시절에는 완벽주의 경향도 있었던 거같고...

일에 미치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도 그렇고...

돌아보면 나는 분명 스스로를 괴롭히는 기질이 있다. 그 기질이 어느 정도의 일에 대한 성공을 불러일으킨지는 모르겠는데

중요한 것은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해야한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나서 당당하게 선택을 해야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우리들은 엄마들이고 아빠들이며 이 세상을 만들고 이끌어왔던 위대한 존재들이지 않은가.

 

좀 더 자존감을 가지고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살 필요성을 느낀다.

물론 겁 먹은 저 꼬마아이가 가끔 한번씩 고개를 들이밀때 토닥여 줄 여유도 필요하고.

 

요새 또다른 한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봤고 나는 또 조금 더 성장했다.